주식, 코스피, 배당금, 주가 전망

버블경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배경과 상황 본문

주식, 코스피, 배당금, 주가 전망

버블경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배경과 상황

소이앱 2022. 6. 29. 08:57

버블경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배경과 상황

버블경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배경과 상황
버블경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배경과 상황

최근 경기, 경제가 좋지 않습니다. 경기침체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이러한 시점에서, 오늘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이 된 버블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가 보이는 법이고 경기, 경제에 대한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성공적인 투자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1993년 일본 경제백서 中 버블 하면 가장 떠오르는 사건은 무엇인가요? 과거의 튤립 버블, 남해회사 버블, 그리고 최근의 비트코인까지 여러 버블 논란이 있지만 오늘은 버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본의 버블경제에 대해 포스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당시 일본은 너무나 버블이 심했던 나머지 버블경제가 터지자마자 심각한 불황이 너무나 오래 지속되어 최소 10년간은 성장률이 0%였고, 이로 인해 속칭 잃어버린 10년 혹은 잃어버린 20년, 더해서 이제는 30년까지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버블이 어떻게 생성되었고 어떻게 터졌는지 원인을 알게 된다면 앞으로도 대비할 수 있기 때문에, 알아두면 분명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나씩 알아보도록 할까요?

버블이 생긴 배경

버블 당시 니케이지수 / 버블 당시 부동산 가격 상승률 일본의 버블경제라고 하면 보통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경제 호황기를 말합니다. 니케이지수는 불과 몇년사이에 3~4배가 될 정도로 폭등했으며 부동산 가격은 자고 일어나면 가격이 오를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일본은 2차 대전의 패전국으로 각종 공습과 히로시마와 나가 자키에 핵폭탄까지 맞아 폐허가 된 지역도 많았는데요, 어떻게 이렇게 빠른 회복이 가능했을까요.

친미정권으로 전환

1951년, 일본은 미국과의 치열한 태평양전쟁을 마치고 1951년 미일 안전보장 조약을 맺으며 친미정권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사진 속 오른쪽의 요시다 시게루 일본 총리는 대미 비밀 외교를 통해 미국과 일본의 동맹구조를 마련하여 전쟁으로 인한 손해를 빠르게 회복시키는데 도움을 줬다는 평이 일반적입니다. 이후 미국은 일본의 군수산업에 엄청난 투자를 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다른 산업에도 영향을 미쳐 1950년대에는 연평균 10%를 넘는 경제성장률을 뽐냈습니다. 일본 정부는 저축 장려정책을 펼쳤고 이것은 투자 증가율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싸우고 난 뒤에 더 친해지는 모습일까요? 또한 미국은 일본을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의 방어막'으로 쓰기 위해 일본을 지원했고 냉전체제 속에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나라로도 생각했습니다. 국제정세에서는 절대로 그냥 선의로 도와주는 일은 없다고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 이득이 된다면 바로 동맹국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소련과 경쟁하기 위해 독일과 일본 등 한때 전쟁을 일으켰던 나라들을 같은 편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한편 폐허가 되었던 유럽은 120조 원을 지원하는 마셜플랜을 통해 재건을 도왔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특유의 상명하복식 민족성과 하나의 목표로 응집이 잘 되는 특성이 있었고 이는 빠른 경제회복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이 매우 발달하게 되었는데 이는 추후 미국의 자동차산업을 위협하게 됩니다.

미국의 금리 상승과 엔저 정책

미국은 1979년 오일쇼크로 인해 유가가 상승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상승한 유가는 생산단가를 올리며 물가의 상승을 이끌었고, 기축통화인 달러 역시 가치가 점차 떨어지게 됩니다. 결국 미국은 달러의 가치가 더 이상 떨어지면 안 되었으므로 두 눈을 질끈 감고 금리를 20%까지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1980년대 즈음에 반토막까지 떨어지게 됩니다. 또한 이때 일본은 수출을 장려하기 위해 엔저 정책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엔화의 가치가 낮을 경우 상대적으로 수출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미국의 금리 상승과 엔저 정책에 힘입어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크게 발달하여 미국의 자동차산업까지 위협을 하게 되었습니다. 엔저 정책이란 엔화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춰 수출경쟁력을 높이는 정책 역전된 도시의 상황을 말합니다.

버블시대, 버블경제의 일본 상황

위에 말씀드렸던 내용들이 거름이 되어 버블이 생기기 좋게 비옥해진 일본은 결국 1982년부터 본격적인 버블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버블은 지나고 나서야 버블인 것을 알 수 있듯이, 당시 일본 국민들은 호황에 취해 매일을 보냈습니다. 이 당시 사람들은 마치 매일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고 하네요. 기업들은 인재를 뽑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아 심지어 면접만 보러 다녀도 면접비(최고 5만 엔 수준)로 생활이 가능하기도 했습니다. 부동산은 토지를 담보로 토지가보다 200% 많은 금액을 대출받을 수 있었기에 무조건적인 불패 신화가 있었고, 돈을 써야만 돈이 들어온다는 미신도 만연했던 시기였습니다. 일본은 자신감이 넘치기 시작했죠. 그 당시의 풍요로운 일본 분위기를 표현하는 코카콜라 광고입니다. 돈을 워낙 쉽게 벌 수 있었기 때문에 힘든 3D직업군은 인력을 구하지 못해 파산하는 경우도 있었고, 일반 가정집에서도 일주일 만에 주식 등으로 벼락부자가 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안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조차 못하게 됩니다. 또한 세계 50대 기업 순위에서 일본은 시가총액 기준 30개 이상을 차지했으며, 특히 50개 중에서도 상위권을 많이 차지하며 위용을 과시했습니다. 심지어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말이 돌았고, 그 정도로 토지의 가격 상승률을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세계 상위 50개 기업 기업들은 순수익이 감소하더라도 토지 가격이 상승한 점을 반영하여 실제로는 시가총액이 상승하는 등의 눈가림을 했고 이는 결국엔 안 좋은 결과로 귀결됩니다.

시티팝(city pop) 장르의 탄생

이렇게 풍족하고 긍정적인 분위기, 몽환적인 분위기를 표현한 음악도 나왔는데 바로 최근에도 인기가 많은 시티팝(city pop)입니다. 재즈, 블루스, 일렉트릭 등의 서구적인 음악을 일본식으로 재해석하여 하나의 장르가 나오게 되었는데 듣기만 해도 그 당시의 감정이 많이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음악에 걱정과 슬픔이 묻어 나온다기보다 미래지향적이며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이죠.

애니메이션의 황금기

기동경찰 페트레이버 1989 / AKIRA. 1988 이때 일본은 애니메이션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당시 제작비를 10억 엔을 쏟기도 했으며 유명한 장면들은 현재까지도 오마주 되곤 하죠. 지금 보더라도 너무 움직임이 부드러워 이 당시 작품으로 믿기지 않지만 모두 수작업으로 탄생한 결과물들입니다. 이 당시 애니메이션들은 모두 수준급의 퀄리티를 자랑했으나 현재 다시 재현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처럼 꿈과 같은 버블 생활(?)을 즐기던 일본. 이 당시 일본에게 어떤 일이 있었길래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요?

Comments